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티븐 스필버그 (문단 편집) ==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 == 현존하는 수많은 감독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감독으로, 그의 손에서 [[죠스(영화)| 죠스]], [[레이더스(영화)| 레이더스]], [[E.T.]],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시리즈]],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우주전쟁(2005)| 우주전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파벨만스]] 등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했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며,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 어릴 적부터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영화를 만들었고 13살 나이에 영화를 감독하여 식구들이 배우로 나온 적도 있다.[* 이때가 1958 ~ 1959년 쯤인데, 공교롭게도 그 해들은 [[현기증(미국 영화)|현기증]], [[뜨거운 것이 좋아]], [[벤허(1959년 영화)|벤허]] 같은 영화사의 걸작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17살 때는 500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 〈불꽃〉을 감독, 각본, 촬영까지 하면서 만들어 동네 극장에 개봉한 적도 있는데, 극장주는 이 아이는 커서 영화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감탄했다. 딱 1개 동네 극장에서 별다른 홍보도 없이 사흘 동안 상영했던 이 영화는 501달러[* 스필버그는 500명의 관람객이 왔는데 한 명이 2달러를 내는 바람에 1달러 수익을 올렸다고 회고했다. 필름은 유실된 상태다. 스필버그가 처음 감독 일을 구할 때 자기소개용으로 필름을 줬던 제작자가 사라졌고, 현재는 3분 가량의 소개용 영상(footage)만 남아 있다.]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1968년 스필버그 자신이 각본・감독・편집을 맡은 단편 '[[https://en.wikipedia.org/wiki/Amblin%27|Amblin]][*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앰블린이 여기서 왔다.]'을 눈여겨 본 당시 [[유니버설 픽처스]] 산하 '유니버설 텔레비전' 제작 부사장이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Sidney_Sheinberg|시드 셰인버그]][* 시드 셰인버그 이 사람 자체도 불과 만 33세의 나이로 '유니버설 텔레비전' 제작 부사장까지 올라간 비범한 인물로 당시 불과 22살의 젊은 감독과 전속 계약을 맺는 도박을 하며 "a lot of people will stick with you in success; I'll stick with you in failure.(많은 사람들이 성공할 때만 붙어있지. 난 자네가 실패할 때만 붙어있을 거네.)"란 말을 남기며 스필버그를 독려했다고 한다. 스필버그에겐 평생 은인인 사람으로 2019년 시드 셰인버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스필버그는 “I Have No Concept About How To Accept That Sid Is Gone(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습니다)”란 말을 남기며 그를 추모했다.]에게 발탁되어 7년 계약을 맺어 방송국에서 [[TV 영화]], [[드라마]]를 연출하며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당시 방송국 감독들 중 가장 어렸다고 한다. 당시 관례상 동료 감독이나 스태프들은 영화계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스필버그 부모님들 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고(...). 첫 연출작은 [[조운 크로퍼드]] 주연의 [[TV 시리즈]] '[[https://en.wikipedia.org/wiki/Night_Gallery_(film)|나이트 갤러리]]'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이었다.--같은 연출부 소속 팀원들 나이가 죄다 스필버그 보다 20살은 가볍게 넘는다(...).-- 첫 단독 연출작은 [[1971년]]작 TV 영화 〈[[듀얼(영화)|듀얼(Duel)]]〉. 도로상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기는 운전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리차드 매드슨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무서운 점은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긴다'라는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한 스토리로 74분 짜리 스릴러를 만들어냈다는 것으로, 저예산 TV 영화라 지극히 단순한 소재와 배경만 가지고 요즘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스필버그의 연출력에 정말 감탄하게 된다. 영화 제작자들은 듀얼을 보고 이거라면 극장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놀라워하며 추가적으로 장면들을 촬영해 넣어 90분으로 늘린 뒤 해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의 [[휠 오브 포츈(죠죠의 기묘한 모험)|휠 오브 포츈]]전은 이 영화를 거의 그대로 베껴 만든 내용.] 참고로 촬영에는 13일, 편집에 10일이 걸렸다고 하는데 스필버그를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만들면서 '''한 번도 정식으로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이다. 데뷔작 '듀얼'의 성공으로 스필버그는 극장판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되고, [[골디 혼]], [[벤 존슨(배우)|벤 존슨]] 주연의 <[[슈가랜드 특급]]>[*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다.]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칸 영화제 출품 당시 수많은 취재진들이 당시 톱스타였던 벤 존슨을 인터뷰하려 하자 존슨이 "(기자) 당신들 나 말고 저 감독(스필버그)을 인터뷰하시오."라고 스필버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영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식인 상어]]와 같은 [[상어]]를 소재로 한 소설 [[죠스]]를 영화화한 '''〈[[죠스(영화)|죠스]]〉'''이다.[* 스필버그 본인에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지만, 스필버그 본인은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백상아리]]에게 안 좋은 선입견을 심어줬다는 죄책감(스필버그 자신이 원래 의도한 바는 식인상어의 등장보단 대처 과정에서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한 인재와 [[군상극]]이었다.), 또 당시 촬영장에서의 스태프들과의 불화(스태프들이 스필버그가 식인상어에게 잡아먹히길 바랄 정도였다고.(...)), 이후 자신의 뜻과는 별개로 진행된 [[죠스 시리즈|속편]]들은 스필버그 본인뿐 아니라 스필버그 팬덤에서도 언급조차 꺼리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라 한다(...).] 1975년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북미 흥행 2억 달러를 넘어서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어 본격적인 '''[[블록버스터(영화)|블록버스터라는 장르]]의 영화 시장을 개척'''하였고, 그 이후로도 여러 흥행작을 줄줄이 뽑아내면서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이상과 현실을 영상으로 옮긴 대표 주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93년에는 '''〈[[쥬라기 공원(영화)|쥬라기 공원]]〉'''으로 본인의 영화였던 '''〈[[E.T.]]〉'''의 세계 흥행기록을 경신한 데 이어, 그 해 겨울에는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상]]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흥행, 작품성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아 최고의 영화감독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 이후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우주전쟁(2005)|우주전쟁]]〉, 〈[[레디 플레이어 원(영화)|레디 플레이어 원]]〉 등 다른 감독 같으면 평생 한 번 만들어 보기도 힘든 작품들을 장르와 내용을 넘나들면서 활발하고 왕성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필모중에 흥행 실패작도 엄연히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엄청난 제작비에 견주면 기대 이하 흥행을 거둔 첫 흥행 참패작인 〈[[1941(영화)|1941]]〉이라든지, [[흑인]] 영화인들의 반발로 당시 말이 많았던 〈[[아미스타드]]〉 같은 영화들은 지독하게 망한 바 있다. 상업영화로 유명해서 잘 알려지지 않지만 사실 그는 '''[[뉴 할리우드]]의 끝자락에 등장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를 이끌어갈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던 감독'''이'''었'''다. 그리고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어젖힌 영화로 평가받는 〈죠스〉를 통해 뉴 할리우드 시대를 '''끝장낸''' 감독이기도 하다(...).[* 다만 이는 스필버그 본인 의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처음 스필버그를 발탁한 시드 셰인버그가 스필버그를 발탁한 이유가 바로 '기발함과 참신함'일 정도로 스필버그는 끝없이 기존에 없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뿐인데 단지 그 시기가 '뉴 할리우드'와 겹쳤던 것뿐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란 흐름 자체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류이다. '뉴 할리우드' VS '블록버스터'의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 대표적으로 제임스 카메론은 [[에이리언 2]], [[터미네이터 2]]로 '속편의 제왕'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건 '뉴 할리우드' 마저도 거스르는 '고전 할리우드' 스타일의 [[타이타닉(영화)|영화 타이타닉]]이었다.] 뉴 할리우드 시대에 활동했던 감독들이 1980년대 들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예외적으로 그의 친구로 알려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를 통해 부활할 듯 했으나 다시 쇠락의 길에 빠진다.] 스필버그는 꾸준한 흥행과 평가로 영화의 역사를 쓰는 업적을 만들었다. 또, 신인 배우들과 후배 감독들의 발굴에 힘쓴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안목 또한 좋은 편이다. 할리우드 내에서 [[블록버스터(영화)|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개념을 만든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대표작이자 최다 참여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부터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영화)|쥬라기 공원]], [[죠스(영화)|죠스]] 등의 작품들로 대중들에게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제작사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앰블린 파트너스]]와 [[드림웍스]]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본인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로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겸비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그 해 월드와이드 전체 1위를 거머쥐며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았다. 애착도 상당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4편까지 전부 본인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영화)|레디 플레이어 원]]의 흥행으로 지금껏 감독한 영화들의 [[박스오피스]] 총수익이 100억 달러[* 한화로 약 11조원]를 넘긴 최초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https://m.the-numbers.com/box-office-star-records/worldwide/lifetime-specific-technical-role/director|#]] 한편 명감독답게 영화를 보는 안목도 탁월하다. 그의 절친인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영화)|스타워즈]]를 시사회에서 상영했을때 다른 영화 감독들과 관계자는 모두 비웃었지만, 스필버그만큼은 이 영화가 성공할 것이라고 여기고 [[존 윌리엄스]]를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트랜스포머(영화)|트랜스포머]]에 제작 및 기획으로 참여하거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를 보고 흥행 대박을 짐작하고 판권을 샀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완전판 복원에 결정적인 기여[* 1989년 27년 전 개봉 당시 삭제된 35분 분량을 복원하면서 화질 보정까지 하도록 [[마틴 스코세이지]]와 같이 컬럼비아 영화사에 복원과 보정을 하지 않으면 앞으론 이 영화사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협박한 끝에 이뤄냈다고 한다.]를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